<견고딕-걸> 작업노트
대본 한쪽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마음’이라고 적어 두었다. 어떤 결정도 하지 못하고 그저 괴로워만 하고 있는 인물들이 나를 이끌었다. 타살과 함께 자살이 벌어진, 살인을 저지른 피의자가 사망하면서 공소권이 소멸된 사건. 그 주변에 남겨진 이들의 ‘어찌할 바를 모르는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누구도 자신의 속마음을 가늠할 수 없도록 볼드 빵빵한 견고딕의 모습, 즉 고딕 메탈 스타일에 숨어 있는 가해자의 쌍둥이 자매 수민이 있었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각자의 깊은 구멍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엄마 최진희와 아빠 김우철이 있었다. 피해자의 가족을 만나러 가는 길, 수민은 친구를 만나는데 피해자의 눈을 기증받은 미나, 심장을 기증받은 현지가 그들이다. 이들은 두려운 길을 문턱을 넘듯 통과의례처럼 지나쳐가는데 이들은 왜 수민과 함께 할까. 어떤 경험도 공유하지 않은 이들은 처음 만나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게 된 것일까. 아마도 이들은 고통과 슬픔, 그리고 그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마음’의 시간을 경험했기에 서로의 고통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는지 모른다. 고통을 경험했기에 고통 옆에 머무는 것은 그 자체로 충분한 이유가 된다. <견고딕-걸>이 가해자에게 서사를 주는 것은 아닌가 질문한 적이 있다. 가해자에게 서사를 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지금의 결과를 마주 보지 않고 우회로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회피, 핑계 등의 말을 적어두었다. 가해자의 쌍둥이 자매 수민은 이 세상과 영원히 이별하기 전 피해자의 가족에게 한 걸음씩 다가간다. 그리고 사과하려고 한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 괴로움이 나의 주변으로부터 시작되었다면 그것은 내가 마주해야 할 일이며 내가 짊어질 일이라고 생각한다. 수민은 가해자의 책임을 짊어지는 과정을 통해 아이러니하게도 은둔의 삶과 이별하고 세상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수민뿐만 아니라 <견고딕-걸>의 등장인물들이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살아갈 방법으로 마주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