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환도열차, 종착역은 2014년 서울입니다
PREVIEW
SAC CUBE 2014 연극_ 환도열차
3.14(금)-4.6(일) 자유소극장
환도열차는 거친 숨을 몰아쉬듯 허연 증기를 토해낸다. 1953년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갈무리되자 부산으로 피난갔던 사람들은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이른바 환도열차에 몸을 싣는다. 그런데 1953년 부산에서 출발한 열차는 난데없이 2014년 서울에 나타난다. 정든 사람들과 이별해야 하는 안타까움과 서울로 향하는 기대 등으로 가득 찼을 환도열차는 더 이상 사람의 숨결을 느낄 수 없다. 단 한 명, 남편을 찾아 서울을 찾은 지순만을 남겨둔 채. 그녀에게 시간을 뛰어넘은 서울은 어떤 곳일까? 2014년 서울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는 건 환도열차만이 아니다.
2013년 <여기가 집이다>로 대한민국 연극대상 대상과 희곡상을 수상하고, ‘한국연극 선정 올해 공연 베스트 7’로 선정된 이야기꾼 장우재(작·연출)는 우리를 또 다른 세계로 안내한다. 그의 상상력은 시간을 훌쩍 뛰어넘은 열차를 만들어내지만 그의 시선은 차분히 서울 곳곳을 훑는다. 그 역시 몸의 실핏줄 같은 서울의 뒷골목을 오갔을 것이고 서울 귀퉁이 선술집에서 잔을 기울이며 삶의 회포를 풀었을 터인데, 그가 바라보는 서울은 낯설다. 그 낯섦은 2014년 서울을 바라보는 지순의 시선과 닿아 있다.
여기가… 서울이에요?
지순은 숨을 돌리고 차분하게 주변을 살핀다. 죽 끓이며 살 부대끼며 살던 부산, 남편과 결혼식을 올렸던 서울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그녀가 알던 곳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90세가 된 남편 한상해는 그녀가 알던 사람이 아니다. 무엇이 이렇게 변하게 한 것일까? 지순은 직접 그 실체를 확인하려고 한다.
“추운 날. 아주 추운 날. 사당패 부부가 언 강을 건냈에요. 강이 얼어서 건널만 허겠다 그렇게 생각했거덩요. 그런데 중간에 그만 폭 여자가 밑으로 꺼쟀애요. 남자가 가까이 가지두 못허구 물러서두 못허구 발광을 했애요. 그런데 강둑에 서 있던 사람들이 그걸 보구 웃앴애요. 사당패가 논다. 사당패가 언강 한가운데서 춤추고 논다. 그러구요. 그 지랄발광이 강둑에 서 있는 사람들헌테 우스꽝으로 보였던 거지요. 사당패니까. 웃음거리니까. 난 이릏케 버젓이 살아있는데 나는 웃음거리가 되가요. 그동안 내 발은 점점 물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애요.” 연극 <환도열차> 中
살려고 버둥댈수록 점점 물속에 빠져드는 것처럼 서울은 자세히 보려고 하면 할수록 잘 보이지 않는 곳이다. 그녀는 이곳 서울에서 정 붙이며 살 수 있을까?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은유
“내가 그놈들 똥구멍을 핥았애요. 정치하는 놈들. 그 놈들은 다 죽었지만 난 살았애요. 반공. 그 괴뢰잔당들 앞장서서 처단하는 데 내가 앞장섰애요. 내가 이렇게 앵카 돌리다가도 그놈들이 부르면 뛰어나갔애요. 몽키 들고 망치 들고 부르도자 앞세우고. 그게 땡크지. 그게 전쟁이지. 전쟁은 끝났어도 전쟁은 계속이에요. 옛날에는 총알이 전쟁이었댔지만 그때는 몽키가, 세멘트가 전쟁이야. 새 나라를 만들어보자. 우리도 잘 살아보자. 길을 딱아보자. 집을 지어보자. 우리가 다 산 거 같애요? 아니애요. 지금도 정신 바짝 안 차리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안 산 거예요. 우리는 또 바뀌여야 돼요. 그게 우리 운명이에요.” 연극 <환도열차> 中
<환도열차>에는 한국 현대사의 다양한 은유가 교차한다. 경제 부흥이라는 명목 아래 어떤 계략과 술수도 개의치 않았던 기업의 발전사는 한상해란 인물을 통해 그 일면을 볼 수 있다. 자전거 만들다 트럭 만들고, 트럭 만들다 자동차를 만들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고, 더 열심히 살아서 또 다른 변화를 일궈내야 한다. 한국전쟁은 1953년에 휴전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어쩌면 한국은 개인과 개인이 적이 되어 서로를 향해 총칼을 겨누고 있는 전쟁의 한가운데 있는지도 모른다.
한상해의 양자로 그 뒤를 이르려는 한동교는 이런 계략과 술수로 얼룩진 한국 현대사의 시간은 지금도 쉬지 않고 흐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또한 연구원 시절 공공의 목적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연구 결과의 핵심 기술을 빼돌려서 정부와 결탁하는데, 정치적 의도로 진실을 왜곡하고, 사람의 가치관보다 현실의 이익을 위해 이합집산했던 한국의 정치사에 익숙한 우리는 한동교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애도 되지 못한 이야기
“현대인은 무언가에 충분히 애도하지 못해 심리적 문제를 갖게 된다. 심리적 문제를 갖지 않기 위해서는 슬픔을 부정하거나 감추지 말고, 슬픔이 생겨났을 때 바로 애도를 시작해야 한다.” 소설가 김형경은 자신의 이런 생각을 ‘애도 불이행’이라는 말을 사용해 설명하고 있다.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마음껏 슬퍼하고 눈물 흘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을 지나 그 수많은 변화를 단번에 뛰어넘어 2014년 서울에 도착한 지순은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순간순간 애도하지 못하고 괴물이 된 사람들을 만난다. 삶의 쳇바퀴에서 자신에 대한 성찰을 하지 못한 채 자신을 잃어간 사람들. 삶을 애도하지 못하고 성찰하지 못한 것은 비단 몇몇 인물에 국한되지 않는다. 역사의 변곡점에서 충분히 성찰하지 못한 한국, 여기 서울은 애도되지 못한 이야기로 가득 찬 곳인지 모른다. 어쩌면 지순은 애도 되지 못한 이야깃더미를 잠시 둘러보고 들추러 온 사람은 아닐까?
<환도열차>의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2014년의 지순이 1953년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단순한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의 몸을 만나 생명력을 얻고 의도된 대사로 다시 살아나 또 하나의 세계로 구현된다. 2014년 지순은 1953년 과거의 인물들과 대화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과거 인물이 현재 인물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2014년 서울에 홀로 떨어진 지순의 이야기는 순식간에 뭉게뭉게 피어올라 무대를 가득 채우고, 한순간에 사그라진다.
"다시 돌아오지 않겠애요. 다신 열차를 타지 않겠애요. 다신 내가 누구라고 말하지 않겠애요. 다신 뭐가 보인다고 얘기하지 않겠애요. 다신 누가 보고 싶다고 말하지 않겠애요." 연극 <환도열차> 中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는 이야기를 통해 가치관의 변화를 경험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순이 쌓고 부순 이야기는 지금 이곳 서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우리는 어떤 변화를 경험하게 될까?
예술의전당 프로그램 <SAC CUBE 2014 프리미어>의 첫 작품인 <환도열차>에는 22명의 배우가 참여한다. 공연마다 새롭고 독특한 캐릭터를 창조하는 윤상화가 한상해 역을 맡아 지순의 남편으로 젊은 청년의 모습과 90세의 노인을 연기한다. 그 밖에 제이슨 양 역에는 이주원, 한상해의 양자 한동교 역에는 안병식, 한상해의 친딸 한수희 역에는 박무영이 연기한다. 그리고 신예 배우 김정민이 시대를 건너온 지순 역으로 출연할 예정이다. 2013년 ‘동아연극상 시청각상’을 수상한 박상봉이 무대디자인으로 참여하는 등 우수 정예 배우와 제작진이 승차한 환도열차는 3월 14일 자유소극장에서 첫 기적을 울린다.
글_ 신재훈 (극단 작은방 대표, <환도열차> 조연출)
SAC CUBE 2014 연극_ 환도열차
3.14(금)-4.6(일) 자유소극장
환도열차는 거친 숨을 몰아쉬듯 허연 증기를 토해낸다. 1953년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갈무리되자 부산으로 피난갔던 사람들은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이른바 환도열차에 몸을 싣는다. 그런데 1953년 부산에서 출발한 열차는 난데없이 2014년 서울에 나타난다. 정든 사람들과 이별해야 하는 안타까움과 서울로 향하는 기대 등으로 가득 찼을 환도열차는 더 이상 사람의 숨결을 느낄 수 없다. 단 한 명, 남편을 찾아 서울을 찾은 지순만을 남겨둔 채. 그녀에게 시간을 뛰어넘은 서울은 어떤 곳일까? 2014년 서울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는 건 환도열차만이 아니다.
2013년 <여기가 집이다>로 대한민국 연극대상 대상과 희곡상을 수상하고, ‘한국연극 선정 올해 공연 베스트 7’로 선정된 이야기꾼 장우재(작·연출)는 우리를 또 다른 세계로 안내한다. 그의 상상력은 시간을 훌쩍 뛰어넘은 열차를 만들어내지만 그의 시선은 차분히 서울 곳곳을 훑는다. 그 역시 몸의 실핏줄 같은 서울의 뒷골목을 오갔을 것이고 서울 귀퉁이 선술집에서 잔을 기울이며 삶의 회포를 풀었을 터인데, 그가 바라보는 서울은 낯설다. 그 낯섦은 2014년 서울을 바라보는 지순의 시선과 닿아 있다.
여기가… 서울이에요?
지순은 숨을 돌리고 차분하게 주변을 살핀다. 죽 끓이며 살 부대끼며 살던 부산, 남편과 결혼식을 올렸던 서울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그녀가 알던 곳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90세가 된 남편 한상해는 그녀가 알던 사람이 아니다. 무엇이 이렇게 변하게 한 것일까? 지순은 직접 그 실체를 확인하려고 한다.
“추운 날. 아주 추운 날. 사당패 부부가 언 강을 건냈에요. 강이 얼어서 건널만 허겠다 그렇게 생각했거덩요. 그런데 중간에 그만 폭 여자가 밑으로 꺼쟀애요. 남자가 가까이 가지두 못허구 물러서두 못허구 발광을 했애요. 그런데 강둑에 서 있던 사람들이 그걸 보구 웃앴애요. 사당패가 논다. 사당패가 언강 한가운데서 춤추고 논다. 그러구요. 그 지랄발광이 강둑에 서 있는 사람들헌테 우스꽝으로 보였던 거지요. 사당패니까. 웃음거리니까. 난 이릏케 버젓이 살아있는데 나는 웃음거리가 되가요. 그동안 내 발은 점점 물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애요.” 연극 <환도열차> 中
살려고 버둥댈수록 점점 물속에 빠져드는 것처럼 서울은 자세히 보려고 하면 할수록 잘 보이지 않는 곳이다. 그녀는 이곳 서울에서 정 붙이며 살 수 있을까?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은유
“내가 그놈들 똥구멍을 핥았애요. 정치하는 놈들. 그 놈들은 다 죽었지만 난 살았애요. 반공. 그 괴뢰잔당들 앞장서서 처단하는 데 내가 앞장섰애요. 내가 이렇게 앵카 돌리다가도 그놈들이 부르면 뛰어나갔애요. 몽키 들고 망치 들고 부르도자 앞세우고. 그게 땡크지. 그게 전쟁이지. 전쟁은 끝났어도 전쟁은 계속이에요. 옛날에는 총알이 전쟁이었댔지만 그때는 몽키가, 세멘트가 전쟁이야. 새 나라를 만들어보자. 우리도 잘 살아보자. 길을 딱아보자. 집을 지어보자. 우리가 다 산 거 같애요? 아니애요. 지금도 정신 바짝 안 차리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안 산 거예요. 우리는 또 바뀌여야 돼요. 그게 우리 운명이에요.” 연극 <환도열차> 中
<환도열차>에는 한국 현대사의 다양한 은유가 교차한다. 경제 부흥이라는 명목 아래 어떤 계략과 술수도 개의치 않았던 기업의 발전사는 한상해란 인물을 통해 그 일면을 볼 수 있다. 자전거 만들다 트럭 만들고, 트럭 만들다 자동차를 만들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고, 더 열심히 살아서 또 다른 변화를 일궈내야 한다. 한국전쟁은 1953년에 휴전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어쩌면 한국은 개인과 개인이 적이 되어 서로를 향해 총칼을 겨누고 있는 전쟁의 한가운데 있는지도 모른다.
한상해의 양자로 그 뒤를 이르려는 한동교는 이런 계략과 술수로 얼룩진 한국 현대사의 시간은 지금도 쉬지 않고 흐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또한 연구원 시절 공공의 목적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연구 결과의 핵심 기술을 빼돌려서 정부와 결탁하는데, 정치적 의도로 진실을 왜곡하고, 사람의 가치관보다 현실의 이익을 위해 이합집산했던 한국의 정치사에 익숙한 우리는 한동교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애도 되지 못한 이야기
“현대인은 무언가에 충분히 애도하지 못해 심리적 문제를 갖게 된다. 심리적 문제를 갖지 않기 위해서는 슬픔을 부정하거나 감추지 말고, 슬픔이 생겨났을 때 바로 애도를 시작해야 한다.” 소설가 김형경은 자신의 이런 생각을 ‘애도 불이행’이라는 말을 사용해 설명하고 있다.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마음껏 슬퍼하고 눈물 흘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을 지나 그 수많은 변화를 단번에 뛰어넘어 2014년 서울에 도착한 지순은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순간순간 애도하지 못하고 괴물이 된 사람들을 만난다. 삶의 쳇바퀴에서 자신에 대한 성찰을 하지 못한 채 자신을 잃어간 사람들. 삶을 애도하지 못하고 성찰하지 못한 것은 비단 몇몇 인물에 국한되지 않는다. 역사의 변곡점에서 충분히 성찰하지 못한 한국, 여기 서울은 애도되지 못한 이야기로 가득 찬 곳인지 모른다. 어쩌면 지순은 애도 되지 못한 이야깃더미를 잠시 둘러보고 들추러 온 사람은 아닐까?
<환도열차>의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2014년의 지순이 1953년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단순한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의 몸을 만나 생명력을 얻고 의도된 대사로 다시 살아나 또 하나의 세계로 구현된다. 2014년 지순은 1953년 과거의 인물들과 대화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과거 인물이 현재 인물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2014년 서울에 홀로 떨어진 지순의 이야기는 순식간에 뭉게뭉게 피어올라 무대를 가득 채우고, 한순간에 사그라진다.
"다시 돌아오지 않겠애요. 다신 열차를 타지 않겠애요. 다신 내가 누구라고 말하지 않겠애요. 다신 뭐가 보인다고 얘기하지 않겠애요. 다신 누가 보고 싶다고 말하지 않겠애요." 연극 <환도열차> 中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는 이야기를 통해 가치관의 변화를 경험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순이 쌓고 부순 이야기는 지금 이곳 서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우리는 어떤 변화를 경험하게 될까?
예술의전당 프로그램 <SAC CUBE 2014 프리미어>의 첫 작품인 <환도열차>에는 22명의 배우가 참여한다. 공연마다 새롭고 독특한 캐릭터를 창조하는 윤상화가 한상해 역을 맡아 지순의 남편으로 젊은 청년의 모습과 90세의 노인을 연기한다. 그 밖에 제이슨 양 역에는 이주원, 한상해의 양자 한동교 역에는 안병식, 한상해의 친딸 한수희 역에는 박무영이 연기한다. 그리고 신예 배우 김정민이 시대를 건너온 지순 역으로 출연할 예정이다. 2013년 ‘동아연극상 시청각상’을 수상한 박상봉이 무대디자인으로 참여하는 등 우수 정예 배우와 제작진이 승차한 환도열차는 3월 14일 자유소극장에서 첫 기적을 울린다.
글_ 신재훈 (극단 작은방 대표, <환도열차> 조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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