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매는 몸

1. 
새벽에 닭들이 울면 아버지가 나를 깨웠다. 아버지는 누런 포대를 하나 들고 나섰고 나는 그 뒤를 따랐다. 시장이긴 하지만, 주택과 상점이 섞여 있는 단촐한 길이었고 그곳을 걸으며, 야채가게 주변에 떨어진 배추 잎이나 열무 줄기 등을 주워서 포대에 담았다. 장사 시작 전 물건을 정돈하는 시간이라 시들어 떨궈낸 잎과 줄기 등이 많았다. 금방 포대가 찼는데 그것을 다시 집에 들고 와서 듬성듬성 썰어 사료와 함께 닭들에게 주었다. 닭들을 키웠던 마당은 황토였는데 마당의 반을 고추를 심었어도 자동차 서너대가 들어올 수 있는 만큼 넓었다. 비가 오면 닭장 처마를 우산 삼아 피해있는 참새를 잡기 위해 어머니가 막대에 걸쳐 바구니를 세워놓았다. 막대에 긴 끈을 늘어뜨려 참새가 바구니 안에 들어오면 끈을 당겼다. 냉장고 문을 열면 참새가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나는 어쩌면 그 시간으로, 그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금을 보내는지 모르겠다. 꿈꾸는 미래가 어쩌면 과거. 마루에 앉아 비 내리는 것을 보고, 심은 옥수수가 하루가 달리 쑥쑥 크는 것을 보고 싶다. 사건은 없지만 충만한 그런 시간을 보내고 싶다.

용현 사거리의 물텀벙 거리를 지나, 신화탕을 끼고 걷다 보면 그 집이 나오겠지. 그대로 있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여기쯤이라고 짐작할 수 있는 터가 있겠지, 싶었다. 황토길은 없어졌더라도 아침마다 닭장문을 열고, 해질녘 닭들이 돌아오면 닭장문을 닫던 그 일상을 추억할 수 있겠지 싶었다. 그런데 웬걸, 이쯤일까 헛갈릴 정도가 아니라 아예 통째로 사라지고 없었다. 어디서 어디까지 사라졌는지 모를 정도로 어떤 경계없이 그냥 쑥, 없어져 버렸다. 야채를 줍던 시장은 물론, 교회, 동사무소 모두 흔적은 커녕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었다. 재개발이야 뭐, 흔할 일인데 내가 살던 곳이 통째로 사라진 것을 보니 이거 정말 대단한 일이구나, 싶었다. 댐이 생기고 마을이 사라졌다는, 어디가에서 들은 향수같은 아득함은 그저 낭만이었구나. 당혹스러움을 지나 누군가가 나를 헤집어 놓은 것 같은 기분. 

2.
검도장을 찾은 첫날 공인 7단 관장님 말씀이 구구절절 사로잡았다. '칼은 팔로 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치는 것이다.' '손으로 칼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손과 칼이 하나가 되어 긴 손이 움직이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 내 몸이 헤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를 앓고 회복이 더딘 여파도 있겠지만, 한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인생의 밧데리가 닿고 있는 일종의 죽음을 향한 여정이 중반부를 넘어선 것이라는 현실 인식이 나를 헤매게 한 것 같다. 마음의 문제인지 몸의 문제인지, 여튼 과거와는 다른 시간을 겪고 있었다. 그러면서 몸의 회복을 위해 뛰기도 하고 수영도 하고 필라테스도 경험했다. 

이런 저런 시간을 보내다가 백발의 노인이 호구를 입고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검도가 궁금했다. 알아보니, 칠순 팔순의 노인들이 계속 수련을 하는 자료들을 보고 나도 늦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검도장을 찾았다. 직장인들과 비교해서 도장을 갈 수 있는 시간이 달라 그에 맞는 도장을 찾기가 쉽지 않았는데, 마침 적당한 시간에 수업을 하는 도장이 있었다. 무엇보다 지상에 있어 공간이 상쾌했다. 

관장님의 어록은 끝이 없지만, 무엇보다 관장님의 태도가 나를 겸허하게 이끈 거 같다. 유튜브에 나오는 수많은 검도 영상과 다르게 내가 잘 따라하지 못하는데, 관장님은 그저 잘했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한두번 중요한 것들을 일깨워 주셨다. 어제는 '한번 더 휘두른 놈이 이긴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뭐랄까, 지금 너의 발동작이 잡히지 않고 발바닥을 구르는 게 어설프지만, 다른 방법이 있지 않다고. 그저 연습의 시간이 너를 이끌거라고, 차분하게 일깨워주셨다. 쟁취와 포기, 모두를 담은 말이다.  

기검체 일치라는 것이 있다. 깊은 뜻을 헤아릴 수는 없지만, 공격하려는 기세와 검과 발(몸)이 하나가 되어 나아간다는 의미다. 그것을 해내기 위해 소리를 내고 칼을 휘두르고 발을 구른다. 어제는 검도장에 아무도 없어 조금 크게 소리를 내며 칼을 휘두르고 발을 굴렀다. 몇번 반복하면서 묘한 쾌감이 느껴졌고, 헤매는 몸이 길을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3. 
버겁게 다짐하지 말자고 생각하며 오랫동안 해오던 새벽 수영을 갈 수도 있고 못갈 수도 있는 오전 10시로 옮겼다. 다짐과 각오가 날 정말 이끄나, 하는 오랜 질문이 있었는데 숨을 들이마시면 어깨가 피고, 그때 팔을 내리면 칼이 아닌 몸으로 치게 되는 것처럼. 스스로 그러한 욕망이 무엇인지, 잠잠해도 내 안에 가득차는 욕망이 무엇인지 질문하게 된다. 

어쩌면 다짐과 각오를 내면에서 찾는 노력을 더 기울인다고 할까. 나이에 맞는 기검체 일치. 즉, 지금의 몸에 적당한 기합과 나아감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된다. 그러면서 사랑과 감사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내 몸과 맘이 덜 헤맸으면 좋겠다. 

생뚱스럽지만, 가장 어려운 일은 적게 먹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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