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어깨 폭만한 선반에 서서 각자 준비한 식기로 한 끼를 해결하는 모습이 이상하게 좋았다. 등산을 좋아하지 않지만 가끔 지리산을 찾는 이유이다. 각자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짐을 지고 올라와 소꿉놀이하듯 끼니를 해결하는 모습이 왠지 경건하게 느껴졌다. 최근에는 다리를 다쳐 하룻밤 만에 내려왔지만 등반을 포기한 채 먹는 식사도 나름 괜찮았다. 일종의 반성 같은 시간.   그는 나에게 샤이보이라고 했다. 샤이도 좋고 보이도 좋으니 샤이 보이는 더 좋다고 생각했다. 아마 영어에 자신이 없어 눈을 피하는 나를 은근히 놀리기도 하고, 그래도 괜찮다는 친근함의 표시이기도 했다. 같이 있는 동안 나의 영어 실력이 늘고 그의 한국어 실력이 늘었다. 서로가 조금씩 익숙해질 무렵 그의 가방이 궁금했다. 일주일 넘게 타국에 머물기 위해 가지고 온 짐은 15리터 정도의 작은 가방이 전부였다. 그나마 노트북과 책을 빼면 더더욱 단출했다. 미국인이지만 정작 미국에 머무는 시간은 1년에 2주 정도라고 했다. 나머지의 시간은 이곳저곳을 떠도는데, 그 삶의 방식이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필요한 것이 없는, 여행자의 가방.   정착하고 싶어도 강제로 걸음을 떼게 하는 것이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처음 보는 얼굴이 다짜고짜 나를 막아섰다. 두서없이 자신의 디자인을 내보이며 고민을 털어놓는데, 그때 알았다. 열정과 접속하는 것이 행복이구나, 관계를 맺는 것이 삶의 의미이구나. ‘삶은 네트워크’라고 메모를 해두었다. 이리도 기쁘고 슬픈 이유는 스치는 것들 때문이라는 것을 조금 안 것 같다. 지금은 그 친구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가난한 자의 삶은 무용담의 연속이다. 아버지는 배다리를 지날 때마다 이곳은 바다였다고, 추억을 이야기하며 격앙되었다. 배다리가 바다였을 때의 기억이 아버지의 기억인지 아버지의 아버지 기억인지 알지 못한다. 아버지는 택시 기사였고, 아버지의 아버지는 트럭을 운전했다. 추억이라기 보다는 어떤 삶의 쟁투. 연극을 이야기할 때 격앙되지 ...

화분

청결을 위해 휴지통을 없앴다는 건물의 입구, 휠체어 이동 통로의 끝은 계단으로 막혀 있었다.   지구는 자전을 하고   어딘가에는 블랙홀이 있다고, 묻지 않은 설명 뒤에   건물에서 도시락을 드시면 남은 음식은 건물 밖으로 갖고 나가야 한다고 안내해 주셨다.   하지만 건물 안에는   도시락을 먹을 장소가 없었다.   괜찮은 상황이 아닌데,   나도 모르게 ‘괜찮습니다’라고 말을 붙였다.   괜찮습니다.   식사는 나가서 하겠습니다.   일부의 속성을 전체로 확장하는 것, 그것이 해석이라고 정의하는 나에게 해석과 오독은 그 경계가 모호하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그분이 흘린 말이 어떤 경계에 있는지,   어떤 속성을 품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지구는 자전을 하고 어딘가에는 블랙홀이 있다…… 로드킬,   오늘도 누군가의 죽음을 통과했다.   끔찍하고 슬프지만,   다시 액셀을 밟았다.   아마도 내가 어떤 짐승을 친다 해도 운전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쭉 뻗은 길을 만들기 위해   죽어간 것들.   글쎄,   생태통로 조성을 위해 서명을 할 수는 있지 않을까.   자연은 회복력이 강하고 멸망하는 것은 인간일지 모른다는 강연자의 설명에 잠시 안도했다.   그래, 나의 나태함은   갈가리 찢길 것이다.   그러니 괜찮을 것이다…… 고래가 두 번이나 임신한 것이 부끄러웠다.   중성화 때를 놓친 것이   일종의 방치 같아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고래는 앞발을 사용해서   닫힌 창문을 열고 나갔다.   집을 2층으로 옮긴 지금도 창문을 열고 위태롭게 난간을 오간다.   현관문을 열면 튀어 나가듯 몸을 내밀고   울어댄다.   나는 이런 고래가 가엽다.   조그만 ...

위로

평생 성직자였던 나도 매번 흔들리는데 어떻게 저런지 몰라.  얼마 전 퇴임한 신부님은 ‘예수 천국, 불신 지옥’ 푯말을 든 무리를 피해   포항의 작은 항구 쪽으로 운전대를 돌렸다.   신부님도 매번 흔들리세요? 응, 그럼. 매번 흔들린다는 신부님은 가자미 세꼬시를 드시며 옆 테이블의 거친 목청을 불쾌해하셨다. 참다 참다 버럭 화를 내셨는데   그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 공연 준비로 힘든 나날이었는데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을 전했다.   자리를 옮겨 맥주를 마시며 좀 더 깊은 속마음을 전했다.   신부님이 흔들려서 전 위로를 받은 거 같아요. 신부님이 피식 웃었다.   작은방이라는 극단 공동체에 있으며 별다른 작업을 하지 않는데도 우린 왜 모여 있나, 생각하곤 한다.   그리고 동료들을 생각한다.   지금 하는 일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허무를 지닌 사람들.   그래서 고통을 통과하는 방법이 비슷한 사람들.   허무에 닿아 지금을 내어주는 사람, 이것이 착한 사람의 정의일지 모른다.   패배할 수밖에 없는 창작자의 삶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될 때가 있다.   아무리 다짐해도   강인해질 수 없는, 허방 위의 삶.   절대 가치 앞에   흔들리는 삶.   서예를 기반으로 작업하고 계신 미술 작가님이   글을 선물해 주신다 해서 ‘위로’ 두 글자를 부탁드렸다.   왜, 이 글을 선택했어요? 잘하고 싶어서요. 돌이켜보면,   위로에 실패했던 건 고통을 어서 지나치고 싶은 조바심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럼에도 위로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연약해지자, 연약해지자   기도하는 이유이다.             ...

다행

도시락 700개를 동네 점포에 주문했는데 사장님이 주문 내용을 가만히 듣더니 말씀하셨다.   떨립니다.   사장님은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고 끙끙대며 트렁크에서 도시락을 꺼냈다.   2년 후, 길을 걷다가   어딘가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 주위를 두리번거렸는데   도시락집 사장님이었다.   또렷하게 내 이름을 기억하고 계셨다.   무슨 말을 나눴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점포 안이 환했던, 사장님 웃음이 기억난다.   그때를 생각하면 오래된 나무 기둥이 떠오른다.   절이나 고택을 지탱하고 있을 법한   검붉게 색이 바랜 기둥.   경험은 쌓이는 것이 아니라 나무 기둥에 손때 묻는 것처럼   결을 만드는 것 같다.   사장님의 인사가 포근했던 것은   그 결이 잠시 드러나서가 아닐까.   나에게 고통이 있다면 그것으로, 그 흔적으로 인사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바다는 동해라고 하는 친구와   서해를 찾았다.   물때를 맞추지 못해   갯벌만 펼쳐진 바다 아닌 바다를 걸었는데 얼마나 걸어야 바다가 나오냐는 핀잔과 역시 바다는 동해라는 무시 섞인 비난 속에서도 같이 걸었기에 웃을 수 있었다.   허탕은 쳤지만 돌이켜보면 다 바다였다.   소설가가 꿈일 때   제대로 퇴고를 마친 작품이 없었다.   그래도 소설가가 꿈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그 꿈으로 누군가를 흠모하고   질투했기 때문일 것이다.   남 등쳐먹고서라도 살아라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말이 이유 없이 찡한 건 고통과 슬픔의 어느 경계에서 피어났기 때문이다. 끙끙대는 존재를   사랑한다.   화가가 물감과 종이를 만나듯 난 사람을 만난다.   사랑하고, 이별하고 때론 밥 한 끼에도 체할 수 있는. 그래서 다양한 넉살을 피우다가도 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