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완성

1. 부끄러움 때문에 신이 필요한 것 같다.  집을 짓는다면 "부끄러움을 숨길 수 있는 곳" 이라는 의미로  한자를 조합해, 이름을 짓고 싶다.  이를 테며, 수부부(廋負負) : 큰 부끄러움을 숨기는 곳 아침에 일어나면  동네를 슬슬 걷는데.  어딘가에 가서 가만히 앉아 있고 싶다, 몸을 누이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싶다.  책을 읽고 싶다.  여름에도 따아를 마시는 취향이라  낮에도 뙤약볕을 즐겨 걷는데,  비슷한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집 근처에 작업실을 얻어 사용하고 있다.  마음에 드는 곳은 비싸거나, 혹은 이미 계약이 되었거나.  맘에 차지 않는 곳은 수리가 필요해 돈이 들어갔다.  그리고 권리금.  곳곳에 놓인 수석의 권리금으로 1,000만 원을 요구한 이발소 사장님은 며칠 만에 300만 원으로 낮춰 다시 말을 걸어왔다.  더 깍으려는 나의 시도를  부동산 사장님이 말렸다.  지금부턴 자존심이라고,  거래가 깨지는 건 큰돈이 아니라  50만 원, 100만 원 때문이라고.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전, 이발소 사장님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자신의 죽음을 막연하게 예감하고 있었던, 이발소 사장님의 자존심.  30년이라고 하셨나.  이 동네에서 긴 시간동안 이발소를 운영하셨다고 한다.  맘 속으로 잠시 이발소 사장님의 영면을 빌었는데,  왠지 50만원을 깎지 않고 권리금을 드렸기에 나 역시 이발소 사장님의 명복을 빌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2.  공연을 앞둔 시기.  예를 들자면 공연 3개월 전, 1개월 전, 1주일 전이  다르듯이 죽음을 앞둔 시기에 따라 몸과 맘이 다르려나.  소망이 있다면,  나의 죽음...

놀이라는 일종의 전통

전통예술이 하나의 장르인가, 질문을 가진 적이 있다. 탈춤 관련 지원서를 쓸 때 탈춤의 장르를 무용으로 기입해야할지 연희로 기입해야할지 헛갈렸다는, 평생 탈춤꾼들로 삶을 살아온 동료의 사연을 들으며 나 역시 해보지 않은 질문을 하게 되었다. 탈춤의 장르를 고민하다 그럼 전통예술은 장르인가, 라는 질문으로 나아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연극, 영화, 음악, 무용... 등등의 단어 뒤에 전통예술이 함께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장르라는 것이 예술의 표현 양식을 구분하는 말이라면 전통예술은 그 안에 이미 음악, 무용, 연희 등 여러 장르가 있으니 다른 특수성이 전통예술을 하나의 묶음으로 구분 짓고 있을 것이다. 그 특수성이 무엇인지는 단숨에 설명할 수 없지만, 전통예술이 하나의 장르라고 규정할 만큼 우리의 의식 속에 어떤 공통된 감각, 형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질문하게 된다. 어쩌면 이것은 ‘전통예술은 이런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일 수도 있고, 전통예술의 일부를 전체로 단정 짓는 편견일 수 있을 것이다. 편견과 해석은 전통예술과 같이 시간의 풍화작용을 견뎌낸 산물 앞에서 지금의 시간을 맞이하기 위해 겪어야 할 어떤 진동 같은 것이다. 해석일 수 있고 편견일 수 있는 경험을 공유하면 <오셀로와 이아고>를 준비하며 여러 전통예술 작업을 접하던 중에 무대의 기본 색이 늘 황토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대단할 것이 없는 발견이지만 경험이 양으로 쌓이다 보니 인식으로 질적 전환이 이루어졌다. 황토색은 다소 과거가 아닌 동시대의 상황을 다루거나 자연 공간이 아닌 곳에서도 적용되었다. 황토색의 무대를 벗어난다고 해도 나풀거리는 자연 소재의 의상이 기울어진 추를 바로 잡아 주었다. 미술 디자이너님들과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는 어떤 이미지가 있었으며 그것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이것은 미술뿐만 아니라 전통예술과 만나는 공연 요소 곳곳에서 생겨나는데 그것을 판단하는 근거는 어떤 무형의 느낌, 이미지였다. 언...

헤매는 몸

1.  새벽에 닭들이 울면 아버지가 나를 깨웠다. 아버지는 누런 포대를 하나 들고 나섰고 나는 그 뒤를 따랐다. 시장이긴 하지만, 주택과 상점이 섞여 있는 단촐한 길이었고 그곳을 걸으며, 야채가게 주변에 떨어진 배추 잎이나 열무 줄기 등을 주워서 포대에 담았다. 장사 시작 전 물건을 정돈하는 시간이라 시들어 떨궈낸 잎과 줄기 등이 많았다. 금방 포대가 찼는데 그것을 다시 집에 들고 와서 듬성듬성 썰어 사료와 함께 닭들에게 주었다. 닭들을 키웠던 마당은 황토였는데 마당의 반을 고추를 심었어도 자동차 서너대가 들어올 수 있는 만큼 넓었다. 비가 오면 닭장 처마를 우산 삼아 피해있는 참새를 잡기 위해 어머니가 막대에 걸쳐 바구니를 세워놓았다. 막대에 긴 끈을 늘어뜨려 참새가 바구니 안에 들어오면 끈을 당겼다. 냉장고 문을 열면 참새가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나는 어쩌면 그 시간으로, 그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금을 보내는지 모르겠다. 꿈꾸는 미래가 어쩌면 과거. 마루에 앉아 비 내리는 것을 보고, 심은 옥수수가 하루가 달리 쑥쑥 크는 것을 보고 싶다. 사건은 없지만 충만한 그런 시간을 보내고 싶다. 용현 사거리의 물텀벙 거리를 지나, 신화탕을 끼고 걷다 보면 그 집이 나오겠지. 그대로 있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여기쯤이라고 짐작할 수 있는 터가 있겠지, 싶었다. 황토길은 없어졌더라도 아침마다 닭장문을 열고, 해질녘 닭들이 돌아오면 닭장문을 닫던 그 일상을 추억할 수 있겠지 싶었다. 그런데 웬걸, 이쯤일까 헛갈릴 정도가 아니라 아예 통째로 사라지고 없었다. 어디서 어디까지 사라졌는지 모를 정도로 어떤 경계없이 그냥 쑥, 없어져 버렸다. 야채를 줍던 시장은 물론, 교회, 동사무소 모두 흔적은 커녕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었다. 재개발이야 뭐, 흔할 일인데 내가 살던 곳이 통째로 사라진 것을 보니 이거 정말 대단한 일이구나, 싶었다. 댐이 생기고 마을이 사라졌다는, 어디가에서 들은 향수같은 아득함은 그저 낭만이었구나. 당혹스러움을 지나 누군가가 나를 헤집어 ...

우산을 씌어준 사람들

너가 이렇게 연출을 못할 줄 몰랐다고 하시며 3만 원을 주셨다. 장소는 진미식당이었고 앞에 계신 분은 윤영선 선생님이었다. 당근인지 채찍인지 모를 돈을 주머니에 넣고 학교로 돌아오는 길, 그래도 고생은 했다고 주시는 돈인지, 그까짓 것 빨리 해치우고 술이나 마시라는 소린지 다시 생각해 봤지만 가늠하기 어려웠다. 뭔가 막막하고 싸늘한, 다시 회상할 때면 그때 그 기분을 초겨울의 날씨라고 표현했다. 어쩔 수 없는데, 그냥 쓸쓸하고, 그냥 복종할 수밖에 없는 한계 같은 벽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다음 연출도 잘했을 리가 없고, 선생님은 1년 동안 인사를 받지 않았다. 무슨 선생이, 옹졸하게 인사도 받지 않나 싶었는데 돌아가신 날 많이 서럽고 슬픔이 북받쳤다. 연극원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말이 조금 줄었고 책을 읽는 시간이나 영화를 보는 시간 역시 조금은 줄어든 것 같다. 그냥 가만히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중, 고등학교 때 농구에 빠져 있었는데 가까운 곳에 활자로 정리된 농구 교본을 두었다. 성인이 되어 수영에 빠져 있을 때도 프린트된 수영 교본을 들고 다니곤 했다. 하지만 이젠 안다. 세상에 이론이란 없다는 것을, 모든 것은 몸의 마찰을 통한 실행의 결과였다는 것을. 누군가가 이론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 역시 글쓰기의 노동이 들어간, 사고의 실행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계기 없이, 어느 순간. 연극원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알게 된 것이다.   입시 면접 때 선생님이 이름을 불러준 것이 기억난다. 중, 고등학교. 대학교에 다니면서 내 이름을 불러주는 선생님이 그리 많지 않았던 거 같다. 사실,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연극원을 다니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생긴 건 면접 날이었다. 서울 상경 첫날, 그러니까 서울에서 첫잠을 자고 일어난 날 나에게 벌어진 청천벽력 같은 일은, 저녁에 묶어둔 자전거가 없어진 것이었다. 눈뜨고 코베인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실제로 베인 것 같이 싹둑 잘린 자물쇠만 덩그러니 전봇대에 남아있었다. 복도에서 선생님을 만났는데, 자전거...

가질 수 없는 것

얼마전 테슬라 모델Y를 계약했다. 차량 가격이 5699만원이고 보조금을 받으면 약 5000만원이 되는 차였다. 푸어로 사느니 카푸어로 살자, 라는 객기도 있었고 변화없는 생활, 특히 경제적으로 도약없는 삶에 작은 돌을 던지고 싶은 호기로운 맘도 있었다. 뭔가를 소비하는 것과 경제적 도약과는 상충되는 일이지만, 서로 다른 길이 하나로 보였다. 뭐랄까. 깊이 사랑했다고 해야하나. 사랑했기에 어떤 고통도 나아가야 할 길로 보였다. 처음엔 머뭇거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확신이 들었고 차대번호가 배정 되었을 땐 마음을 굳히고 필요한 물품을 구입했다. 필요한 물품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한무더기 작지 않은 소비였다.  자전거를 싣고 강원도 임도를 향해 가는 길, 차박을 준비하며 파트너와 쿵쾅대는 길을 상상했다. 온갖 안락한 테슬라 라이프를 꿈꾸었지만 결과적으로 난 다른 차를 구입했다. 근 10년을 택시로 사용한 주행거리 이십만이 넘는, 어떤 이는 폐차를 했을지 모를 차였다. 계약이 많아 모델Y를 올해 안에 받기 어려워졌고 다른 여건도 도와주지 않았다. 무엇보다 빚을 지지않고 내 삶 안에서 무리하지 않는 범위의 차를 구입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고백하기 부끄럽지만, 모델Y를 인도받지 못하겠다 생각한 날 깊이 서글펐다. 카푸어도 되지 못하는 구나, 젠장.  얼마간 우울했다. 이별후 만남의 시간을 복기하듯 난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생각했다. 어떤 날이 떠올랐다. 그 날, 어두운 방에 누워 내 몸만 세상의 바닥 밑으로 꺼지는 것 같아 깊이 절망했다. 햇빛이 가득 들어오는 2층 집에서 낮에도 눅눅하고 컴컴한 반지하로 이사온 날이었다. 그때, 알았다. 어린 시절 절절한 가난에도 호기로울 수 있던 건 황토와 햇빛 덕분이었다는 것을. 가난해도 누려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그러다가 한때 부풀었던 나의 맘에 작은 바람막이를 쳐주었다. 모델Y를 갖고 싶은 맘엔 순수한 기호와 애정이 가득 있었는지 모른다고. 그 욕망은 그리 탐욕스럽지 않았다고. 우습게도 차를 인도받은 강...

기도하는 마음

1. 연약하고 연약해지자, 라고 다짐하며. 이것이 나의 힘만으로는 어렵다라는 생각이 들어 두렵다.  인생을 완성하는 죽음에 대하여 생각한다. 창작자로서의 삶은 어때야 하는가 생각하며 생과 사의 경계, 삶이 엉킨 곳곳을 통과하는 삶을 되새긴다. 읽을 책들이 책상에 쌓여만 가는데, 책을 읽는 것만으로 충분히 세속적이다. 주머니속 송곳처럼 튀어나오는 것이 있다. 게으르지만 뾰족한.  2. 매일 같은 기도를 하는 것은 나아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고 있다.  3. 내년 7월의 공연 제목을 <제목들>이라고 붙였다. 돌이켜보면 고통과 슬픔만이 경험이었다. 그것만이 작은 웅덩이를 만들고, 그곳에 떨구어져 우연히 고이는 슬픔만이 유일한 교감의 흔적이다. 타인의 슬픔과 고통 앞에서 넉살을 부리고 싶지 않다. 사이와 침묵 앞에 초라해지고 싶다.  4. 밥에 관해서 생각한다. '먹고 사는' 은유적 표현이 아닌 구체적인 한 끼의 식사에 관해. 요즘 혼자 밥을 먹는 일이 많았다. 그 과정이 고단하고 힘이 들었다. 같이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 애써 혼자 먹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무엇때문에 그랬을까, 질문하다 답을 만나고. 다시 질문한다.  5. 쓴다. 나아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서. 

<견고딕-걸> 작업노트

대본 한쪽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마음’이라고 적어 두었다. 어떤 결정도 하지 못하고 그저 괴로워만 하고 있는 인물들이 나를 이끌었다. 타살과 함께 자살이 벌어진, 살인을 저지른 피의자가 사망하면서 공소권이 소멸된 사건. 그 주변에 남겨진 이들의 ‘어찌할 바를 모르는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누구도 자신의 속마음을 가늠할 수 없도록 볼드 빵빵한 견고딕의 모습, 즉 고딕 메탈 스타일에 숨어 있는 가해자의 쌍둥이 자매 수민이 있었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각자의 깊은 구멍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엄마 최진희와 아빠 김우철이 있었다. 피해자의 가족을 만나러 가는 길, 수민은 친구를 만나는데 피해자의 눈을 기증받은 미나, 심장을 기증받은 현지가 그들이다. 이들은 두려운 길을 문턱을 넘듯 통과의례처럼 지나쳐가는데 이들은 왜 수민과 함께 할까. 어떤 경험도 공유하지 않은 이들은 처음 만나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게 된 것일까. 아마도 이들은 고통과 슬픔, 그리고 그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마음’의 시간을 경험했기에 서로의 고통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는지 모른다. 고통을 경험했기에 고통 옆에 머무는 것은 그 자체로 충분한 이유가 된다.     <견고딕-걸>이 가해자에게 서사를 주는 것은 아닌가 질문한 적이 있다. 가해자에게 서사를 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지금의 결과를 마주 보지 않고 우회로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회피, 핑계 등의 말을 적어두었다. 가해자의 쌍둥이 자매 수민은 이 세상과 영원히 이별하기 전 피해자의 가족에게 한 걸음씩 다가간다. 그리고 사과하려고 한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 괴로움이 나의 주변으로부터 시작되었다면 그것은 내가 마주해야 할 일이며 내가 짊어질 일이라고 생각한다. 수민은 가해자의 책임을 짊어지는 과정을 통해 아이러니하게도 은둔의 삶과 이별하고 세상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수민뿐만 아니라 <견고딕-걸>의 등장인물들이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살아갈 방법으로 마주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