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세술

잘 안 될 것이다. 

공연을 앞두고 같이 화이팅을 외치고 돌아서서 

내가 생각한 의도는 관객에게 닿지 않을 것이다, 읊조린다. 


심술을 덜 부리기 위해서. 


아주 잠시, 

권력의 표현 방식을 따라본다. 


말 끝을 흐리거나


이를테면, 대충 의미가 몸과 어조로 전달되었을 즈음

동사를 뱉지 않고 얼버무리거나 


나에게 유리한 제스처로 

의사 표현을 한다거나


그래서 결국 처참해진다. 

닿을 수 없는 것에 닿았다 떨어지는.


바쁜데 비참해지기까지 한다. 


경계에 피는 꽃, 

웃음. 


꺾이지 않는 웃음에 대해 생각한다. 


웃음에 담긴 빈부의 차이.


이를테면

여유와 넉살. 


여유는 태어난 것이고

넉살은 길러진 것이다. 


내 웃음은 어느 경계에 있을까. 


‘나이가 들수록’ 등의 표현은 잘 쓰지 않지만. 

맘 속에 담을 때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돈의 꼬리는 참으로 길게 세세히 뻗쳐 있다. 


그리고, 

돈은 최고 단계의 인문학이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다.


커피를 마시는 것은 

정신을 깨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야식을 먹는 것은

배가 고파서가 아니다. 


책을 한 권 가방에 넣는 것은

읽을 시간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적적해서다. 


기절하듯 잠에 들고

기겁하듯 잠에서 깰 때. 


도저히 이렇게 살 수는 없겠다, 싶을 때. 


어딘가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했다. 


고통도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세상의 고통이 상향 평준화되어

아직 이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겸손은 사람에 대한 

태도가 아니라 


아침, 책상 위

A4용지 위에 놓인 활자와 인물에 대한 태도이다. 


그러하기에

너무나 건방지다. 


작업을 하며 동료와 이야기를 나눌 때

‘정상’이라는 말을 담지 않는다. 


굳이 써야 한다면

‘일반적’ 혹은 ‘대다수’라는 말을 쓴다. 


‘해결’이라는 말 역시 조심해서 쓴다. 


늘, 

해결보다 해결을 위한 공동체의 지속 가능한 힘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해결 방안 못지 않게

우리는 괜찮은가, 살피게 된다. 


그리고 계속.



                                                                                         @1docci, 𝗥𝗲𝗮𝗱𝗶𝗻𝗴ㅣ기획연재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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