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지 않게 접영 하는 법

공연이 끝나갈 즈음 무대 옆에 대기하고 있던 배우님이 드러누웠다. 무대감독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던 터라 놀라 뛰어갔는데, 호흡 곤란을 토로했다. 바로 진행된 커튼콜에 나서지 못하고 바로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됐는데, 이송 중에도 호흡이 어려워 애를 태웠다. 병원에 도착하고, 다행히도 비교적 빠르게 몸 상태가 회복되었는데, 응급실 의사의 대처가 인상적이었다. 숨을 들이마시려고 애쓰는 배우님의 노력을 말리며, 그만 마시고 내쉬라고 가슴을 압박했다. 거칠게 숨을 들이쉬던 배우님은 얕은 숨을 토해내기를 반복하며 곧 안정을 되찾았다. 생뚱스러운 생각이 남았다. ‘아, 숨을 쉰다는 것은 들이마시는 것과 내쉬는 것으로 이루어졌구나.’


수영하면서 비슷한 감각을 접하는데, 물에 뜨기 위해서는 물을 눌러야 한다는 것이다. 배영의 경우가 대표적인데 물에 잠기는 머리를 다급하게 치켜세우면 세울수록 몸은 가라앉아 숨쉬기가 더 어려워진다. 머리를 지그시 물을 향해 내려놓을 때, 비로소 머리가 뜨며 호흡을 할 수 있다. 김연아 선수가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때, 한 발을 딛고 활주하듯 얼음판을 미끄러지는데 해설의 탄성이 나를 들뜨게 했다. "아, 얼음을 누르고 있어요." 왠지 설레고 안심이 되었다. 


접영을 배울 때 선생님 말씀에 은근히 짜증이 났는데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 나에게 수영을 힘들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니, 누가 힘들고 어렵게 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선생님의 말씀은 대략 이런 것이다. 물속에서 벽을 박차고 몸을 움직여 앞으로 나아간 후 처음으로 몸이 물 밖으로 나올 때 입을 크게 벌려 숨을 한껏 들이켜면, 그만큼 몸은 더 깊게 물 밑으로 내려앉는다는 것이다. 그럼 다시 떠오르려고 더 큰 힘을 써야 하고 그만큼 다시 내려앉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허우적대지만 그럴수록 더 깊이 헤어 나오지 못하는 곳으로 향하는 것이다. 짜증은 났지만 토를 달 수 없이 내 몸이 선생님의 설명을 증명하고 있었다. 선생님의 설명은 간단했다. 첫 호흡 때 입을 조금만 벌려 숨을 작게 쉬라는 것이다. 힘들이지 말고 슬슬 하면 몸이 살짝 가라앉고, 그 반작용으로 몸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면 그것을 이용해 살짝 숨을 쉬라는 것이다. 슬슬슬, 작용과 반작용의 궤적을 타는 것이다. 


공연을 앞두고 극장에서 여러 리허설을 진행하는데 처음으로 기술적인 요소들과 배우들이 만나는 이른바 테크 리허설은 연출로서 긴장되고 두렵기까지한 시간이다. 여러 곳에서 출발한 감정이 병목현상으로 머무는 시간이며, 평온 속에 숨어있던 팽팽함이 날카롭게 드러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난 숨을 고른다. 마치 입을 크게 벌려 숨을 들이켜면 깊게 침몰하고, 다시 더 큰 힘으로 떠오르려 애써야 하는, 그 거친 파도가 나를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나의 숨이 타인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라며 몸을 움츠린다. 


요즘 자주 질문한다. 다짐과 각오가 나를 변화시켰나? 지난 시간을 복기하며 어떤 순간들을 떠올리는데 나의 다짐과 각오의 파동이 누군가에게 물결쳐 그 누군가를 불안하게 하고 흔들어 놨던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나의 파장 옆으로 벗어난 사람들을 생각하며 나의 호흡이 너무 거칠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삶의 리듬과 템포를 찾는 과정이라고도 위안하기도 한다. 일종의 반성인가 싶다가도 더 날카롭게 세속의 방법을 터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연극에 관한 여러 말 중 ‘연극은 변한다’라는 말이 오래 남아있는데, 눈을 뜨면 집을 나와 더 이상 즐길 것이 없을 때 집으로 향하던 내가 커피 한잔 마실 시간만 남아도 집으로 들어가는 지금의 나와 대비되어 나 역시 변하고 있구나, 생각한다. 지금의 내가 물 밖으로 나오기 위한 잠영인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기 위한 솟구침인지 알 수 없지만 변화의 파동이 올 때 조금 유연하게 나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반 년 만에 다시 찾은 수영장에서 긴 행렬을 따라갈 수 없어 중급반으로 내려오길 결심하면서, 곧 다시 상급반으로 올라와야지, 다짐을 한다. 



@1docci, 𝗥𝗲𝗮𝗱𝗶𝗻𝗴ㅣ기획연재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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