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

윤회를 육회로 잘못 읽은 날, 
지갑도 잃어버렸다. 


조금 부끄러워하고 말 일이

아까운 날이 되어 버렸다. 


아끼던 지갑이었고, 

잘 갖고 다니지 않던 현금도 마침 들어 있었다. 


신분증이 있어 다시 돌아오나 싶었지만 

지갑을 찾을 수 없었고

그 이후로 지갑을 갖고 다니지 않는다. 


육회 전문점에서 

이 얘기를 꺼냈다. 


남들 앞에서 낭독을 하는데 윤회를 육회로 잘못 말했다고, 

마침 시간이 남아 가까운 벤치에 앉아 아까 한 실수를 웃으며 나누다가 

지갑을 놓고 다음 행선지로 갔다고. 


그래서 지금까지 지갑을 갖고 다니지 않는다고. 


그 덕인지, 그 이유 때문인지

친구가 육회값을 냈다. 


대부분의 조언은 실은

벼랑 끝, 나를 위해 찾은 말들이었다.


빠르게 가기 위해 천천히 가라고 하거나

언덕은 넘기만 하면 되니 그 모습에 너무 연연해하지 말라거나. 


말하는 나는 담담했고

듣는 이의 초점은 나를 통과하고 있었다. 


애초에 남을 위한 말은 불가능했다.


나를 위한 말을 

너를 향해 하는 것


이것이 대화라고 자조하고 있을 때

다시 지갑을 샀다.


하노이, 처음 가보는 여행지였고

우리 모두 즐거웠다. 


서로가 서로의 지갑을 사줬으며

그 틈에서 나도 하나 얻었다. 


내가 샀는지, 누가 사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지갑은 

주차를 하고 연습실로 가는 길에 잃어버렸다. 


친구가 고민을 털어놓았다. 


믿음과 기다림은 

동의어라고, 조언했다.


닿을 수 있을까. 


굳은살 같은 

관성으로 삶이 완성될 수 있을까. 


새벽 같은 아침에 눈을 뜨는 이유는 

질문을 피해 일찍 잠이 들기 때문이다. 



                                                                                         @1docci, 𝗥𝗲𝗮𝗱𝗶𝗻𝗴ㅣ기획연재 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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