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
휠체어 이동 통로의 끝은 계단으로 막혀 있었다.
지구는 자전을 하고
어딘가에는 블랙홀이 있다고, 묻지 않은 설명 뒤에
건물에서 도시락을 드시면
남은 음식은 건물 밖으로 갖고 나가야 한다고 안내해 주셨다.
하지만 건물 안에는
도시락을 먹을 장소가 없었다.
괜찮은 상황이 아닌데,
나도 모르게 ‘괜찮습니다’라고 말을 붙였다.
괜찮습니다.
식사는 나가서 하겠습니다.
일부의 속성을 전체로 확장하는 것,
그것이 해석이라고 정의하는 나에게
해석과 오독은 그 경계가 모호하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그분이 흘린 말이 어떤 경계에 있는지,
어떤 속성을 품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지구는 자전을 하고
어딘가에는 블랙홀이 있다……
로드킬,
오늘도 누군가의 죽음을 통과했다.
끔찍하고 슬프지만,
다시 액셀을 밟았다.
아마도 내가 어떤 짐승을 친다 해도
운전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쭉 뻗은 길을 만들기 위해
죽어간 것들.
글쎄,
생태통로 조성을 위해 서명을 할 수는 있지 않을까.
자연은 회복력이 강하고
멸망하는 것은 인간일지 모른다는 강연자의 설명에
잠시 안도했다.
그래, 나의 나태함은
갈가리 찢길 것이다.
그러니
괜찮을 것이다……
고래가 두 번이나
임신한 것이 부끄러웠다.
중성화 때를 놓친 것이
일종의 방치 같아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고래는 앞발을 사용해서
닫힌 창문을 열고 나갔다.
집을 2층으로 옮긴 지금도
창문을 열고 위태롭게 난간을 오간다.
현관문을 열면 튀어 나가듯 몸을 내밀고
울어댄다.
나는 이런 고래가 가엽다.
조그만 마당이 있는 집이라면
고래는 햇볕 아래서 몸을 뒹굴 것이다.
그래서, 지난주에는
부동산을 찾았다.
오래된 욕망에 애착이 생긴다.
아버지를 걱정하는 어머니에게
괜찮아지실 거라고, 말씀드리고.
구입한 적 없는 화분이
말라비틀어지기 전에 물을 준다.
지구는 자전을 하고
어딘가에는 블랙홀이 있다고.
하나 마나 한 말이지만
딱히 다른 말을 할 수 없는.
질 수 없는 말을 달고 산다.
@1docci, 𝗥𝗲𝗮𝗱𝗶𝗻𝗴ㅣ기획연재 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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