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평생 성직자였던 나도 매번 흔들리는데
어떻게 저런지 몰라. 


얼마 전 퇴임한 신부님은

‘예수 천국, 불신 지옥’ 푯말을 든 무리를 피해 

포항의 작은 항구 쪽으로 운전대를 돌렸다.  


신부님도 매번 흔들리세요?

응, 그럼.


매번 흔들린다는 신부님은

가자미 세꼬시를 드시며

옆 테이블의 거친 목청을 불쾌해하셨다.


참다 참다 버럭 화를 내셨는데 

그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 공연 준비로 힘든 나날이었는데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을 전했다. 


자리를 옮겨 맥주를 마시며

좀 더 깊은 속마음을 전했다. 


신부님이 흔들려서

전 위로를 받은 거 같아요.


신부님이 피식 웃었다. 


작은방이라는 극단 공동체에 있으며

별다른 작업을 하지 않는데도 우린 왜 모여 있나, 생각하곤 한다. 


그리고 동료들을 생각한다. 


지금 하는 일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허무를 지닌 사람들. 

그래서 고통을 통과하는 방법이 비슷한 사람들. 


허무에 닿아

지금을 내어주는 사람,

이것이 착한 사람의 정의일지 모른다. 


패배할 수밖에 없는 창작자의 삶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될 때가 있다. 


아무리 다짐해도 

강인해질 수 없는, 허방 위의 삶. 


절대 가치 앞에 

흔들리는 삶. 


서예를 기반으로 작업하고 계신 미술 작가님이 

글을 선물해 주신다 해서 ‘위로’ 두 글자를 부탁드렸다. 


왜, 이 글을 선택했어요?


잘하고 싶어서요.


돌이켜보면, 

위로에 실패했던 건

고통을 어서 지나치고 싶은 조바심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럼에도

위로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연약해지자, 연약해지자 

기도하는 이유이다. 



                                                                                   @1docci, 𝗥𝗲𝗮𝗱𝗶𝗻𝗴ㅣ기획연재 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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